이번 월드컵 축구대회는 몇 월 (몇 일/며칠)부터 진행될까?
위 예문에서 맞는 표기를 고르라고 하면 왠지 ‘몇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며칠’이 맞는 표기입니다. 즉 ‘몇 월 몇 일’이 아닌 ‘몇 월 며칠’이 올바른 표기입니다. 위의 이미지를 보면 자막에 ‘몇 월 며칟날’이라고 적혀 있는데 ‘몇 월 며칠’이 옳은 표기이기 때문에 ‘며칟날’이라고 표기된 것입니다. (며칟날은 ‘며칠’+’날’의 구성) ‘몇 년’, ‘몇 월’이 있고 ‘몇 시’, ‘몇 분’, ‘몇 초’도 있으니, ‘몇 일’도 일단 이치상으로는 합당한 표기입니다. 그러나 ‘몇 일’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 며칠이 맞고 몇 일은 틀린 것인가 하면, 우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며칠은 ‘몇’과 ‘일'(日)이 합쳐진 말이 아닙니다. 중세 국어 문헌에 며칠의 뜻으로 ‘며츨’이라는 표기가 나타납니다. 1517년 이전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번역박통사’ 에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타납니다.
“說幾箇日頭?” “說三日三宿。”
“며츠를 셜웝ᄒᆞ리러뇨?” “낫 사ᄒᆞᆯ, 밤 사ᄒᆞᆯ ᄒᆞᆯ 거시라.”
이를 현대어로 번역하면 “며칠을 설법하겠더냐?” / “낮에 사흘, 밤에 사흘 할 것이다.” 정도로 번역됩니다.
현재 정설로 여겨지는 어원설에 의하면 이 표기는 ‘몇’ 뒤에 ‘-을’이 합쳐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을’은 ‘이틀’, ‘사흘’, ‘나흘’과 어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몇 뒤에 ‘-을’이 붙어 ‘며츨’이 된 것이 음운 변화로 인해 ‘며칠’이 되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발음 면에서 보아도 ‘며칠’을 ‘몇 일’로 적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몇’과 ‘일’은 둘 다 독립된 의미를 구성하는 실질 형태소입니다. 자음으로 끝나는(받침이 있는) 선행 형태소 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후행 형태소가 오는 경우 선행 형태소의 끝소리가 후행 형태소로 연음되는데, 후행 형태소가 형식 형태소인 경우 선행 형태소의 끝소리가 그대로 연음되는 반면, 후행 형태소가 실질 형태소인 경우는 선행 형태소의 끝소리가 그대로 연음되지 않고 대표음으로 바뀌어서 연음됩니다. 이는 ‘웃다’의 활용형인 ‘웃어’와 명사 ‘웃어른’의 발음 차이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웃어’의 ‘-어’는 문법적 기능을 할 뿐 단독으로 쓰일 수 없는 형식 형태소이므로 앞의 ‘웃’에서 ㅅ이 그대로 연음되어 [우서]로 발음됩니다. 반면, ‘웃어른’의 ‘어른’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의미를 갖는 실질 형태소이므로 앞의 ‘웃’에서 ㅅ이 대표음인 ㄷ으로 바뀐 채로 연음되어 [우더른]이 됩니다. ‘몇 월’이 [며춸]이 아닌 [며둴]로 발음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몇 일’이라면 [며칠]이 아닌 [며딜]로 발음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며칠]로 발음되기 때문에 이를 ‘몇’과 ‘일’이 합쳐진 말로 볼 수 없고 따라서 ‘몇 일’로 쓸 수 없는 것입니다. 한글 맞춤법 제4장 제4절 제27항 붙임2의 규정 ‘어원이 분명하지 아니한 것은 원형을 밝히어 적지 아니한다’에 의거하여 소리나는 대로 ‘며칠’로 씁니다.
1933년 ‘한글 마춤법 통일안’ 규정부터 ‘며칠’과 ‘몇일’로 적던 것을 ‘며칠’로 통일했는데, 그 당시에는 ‘얼마 동안의 날’이라는 의미로 쓸 때만 ‘며칠’로 통일하였으며 ‘몇 번째 날’이라는 의미로 쓸 때는 ‘몇 일’로 쓰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두 말의 차이가 모호하고 혼란을 불러일으키게 되자, 1988년 한글 맞춤법 규정을 개정하면서 ‘몇 번째 날’이라는 의미도 ‘며칠’로 통일했습니다. 따라서 ‘몇 월 몇 일’도 ‘몇 월 며칠’로 쓰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므로 ‘몇 일’이라고 쓰는 경우는 없고 무조건 ‘며칠’이라고 써야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참고로, ‘몇 월’은 띄어서 써야 하지만, ‘며칠’은 ‘며 칠’로 띄어서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며칠은 ‘며’와 ‘칠’로 분석되는 단어가 아니라 ‘며칠’ 자체를 통째로 한 단어로 보기 때문입니다.
예문
- 며칠째 기다리고 있다.
- 네 생일이 12월 며칠이지?
- 이번 대통령 선거는 몇 월 며칟날 실시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