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납량’이라는 단어는 사실 공포와 관련이 없다

날짜: Posted on

(사진은 여름철에 ‘납량특집’으로 방영되었던 <전설의 고향> 오프닝입니다.)

무더운 여름날에 생각나서 포스팅합니다.
각 계절들(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하는 단어들이 매우 많이 있는데, 여름을 상징하는 수많은 단어들 중 두 개 정도 골라보자면 ‘피서’와 ‘납량’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두 단어에 대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피서’라고 하면 단순히 더위를 피하는 것을 떠올리지만 ‘납량’이라고 하면 대부분은 왠지 뭔가 공포스럽고 으스스한 것을 떠올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납량’은 공포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納(들일 납)에 涼(서늘할 량)자를 쓰는 단어로, ‘서늘한 기운을 들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피서’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단어인 것입니다.

납량만흥
신윤복의 그림 ‘납량만흥’

그렇다면, ‘납량’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공포스러운 어감을 갖는 단어가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1980년대 이전에도 여름만 되면 TV에는 ‘납량 특집’이라고 불리는 프로그램들을 방영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납량’이라는 단어가 일상생활에 자주 사용되었기 때문에 ‘납량 특집’이 공포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더위를 잊고 집중해서 볼 수 있는 각종 오락영화나,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예능 프로 등도 ‘납량 특집’으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어느새부터 ‘납량 특집’이라고 불리는 프로그램 중 공포물이나 스릴러 등의 비중이 높아지더니 1990년대에는 여름마다 납량 특집으로 방영되었던 전설의 고향이 큰 인기를 끌었고 경쟁 방송사들도 납량 특집으로 공포물을 방영하게 되었으며 또 그 당시에는 ‘납량’이라는 단어도 일상생활에선 잘 안 쓰이는 단어가 되었던 탓에, 특히 여름철에 우리나라에서 공포물의 수요가 높은 것과 맞물려 결국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납량=공포’라는 등식이 각인되어 오늘날에 이르는 것입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